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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뇌사리보탑이라고 하는가?
  달메 2013-04-10   (2770번째 읽음)
봉정암 사리탑과 참배신도, 2005.10.19.17:00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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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사리탑을 왜 봉정암불뇌사리보탑이라고 하는가?

석가모니불의 뇌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삼국유사에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빼어난 설악산 - 이 산의 높은 곳에 기암으로 둘러싸인 봉정암이 있다. 봉정암은 설악산에 있는 사찰.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리탑 기저(바탕 바위)의 해발높이는 약 1,245m다. 사리탑 기저의 해발 높이 1,245m는 1 : 5,000 지형도(雪岳 048)에서 개략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따라서 보통 말하기를 봉정암이 해발 1,244m에 위치한다는 것은 사리탑의 기저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244m라고 쓴 곳은 봉정암 홈페이지와 국립공원설악산 홈페이지(생생동영상)에 있다.


한편 사리(Sarira)란 부처의 신골(身骨)을 뜻하는 말로 써 왔으나 지금은 의미가 조금 변했다. 다비(茶毘) 후 나온 석가여래 부처의 사리를 진신사리(眞身舍利), 고승(高僧)의 사리를 승사리(僧舍利)라 한다. 진신사리는 탑에 봉안하고, 승사리는 부도(浮屠)에 안치하는 게 보통이다. 한편 법사리(法舍利)란 석가여래가 설법한 것을 기록한 불교 경전을 말한다.


신라의 자장법사(慈藏法師 , 혹은 慈藏律師. 590~658)는 서기 636년에 당나라로 불법(佛法)을 구하러 갔다가 7년 후인 643년 음력 3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석가여래 부처의 사리, 가사(袈裟. 옷), 불경 등을 가져왔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은 황룡사9층탑 건립을 왕에게 건의했고, 가지고 온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여러 곳에 사찰과 암자도 창건했다. 봉정암도 그때 창건된 것이다. 봉정암 창건연도는 644년(혹은 643년)으로 알려져 있다.


봉정암 사리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은 높이 3.3m인 5층석탑이다. 앞에서 쓴 바와 같이 해발 약 1,245m 되는 암반 위에 있다. 봉정암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불자들이 찾는 것은 사리탑이 무언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리탑 앞에 펼쳐지는 확 트인 장관. 또 조금 위의 전망대에서 보면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룡능선이며 용아능선의 절경은 말을 잃게 한다. 탑의 정기와 천산(天山)의 기운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곳이 아닐까.


봉정암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적멸보궁이란 석가여래의 사리, 즉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그래서 온갖 번뇌와 망상을 깨끗하게 없애 주는 보배로운 궁이라는 의미이다.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상은 없다.


봉정암에서 만든 명함 크기의 카드에는 사리탑을 “봉정암 불뇌사리보탑”이라 적어 놓았다.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란 무슨 의미인가? 부처님의 뇌(腦)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탑이란 뜻이다. 왜 부처님의 사리 중에도 뇌사리를 모신 곳이라고 하는가? 먼저 몇 가지를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사서(史書)에 의하면, 한반도에 진신사리가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진흥왕 때인 서기 549년이고, 그뒤 여러 번 공식 비공식적으로 사리를 가져왔다.
가장 최근에 진신사리가 들어온 것은 1992년이다. 설악산 신흥사 가는 길에 통일대불을 세울 때, 미얀마 정부에서 진신사리 3과(顆)를 기중한 것이 그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법화경, 화엄경 등 법사리와 함께 1997년 10월 25일 점안된 통일대불에 복장유물(腹藏遺物)로 봉안되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봉정암 사리탑을 왜 부처님의 사리 중에도 뇌사리를 모신 곳이라고 하는가? 643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사리에 관해 삼국유사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자장법사가 부처의 두골과 치아, 사리 100립, 그리고 부처가 입던 붉은 비단에 금색 점이 있는 비단옷 한 벌을 가지고 왔다. 그 사리는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황룡사탑에 두고, 하나는 태화탑에 두고, 하나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다.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慈藏法師 所將佛頭骨 佛牙 佛舍利百粒 佛所著緋羅金點袈裟 一領 其舍利 分爲三 一分在皇龍塔 一分在太和塔 一分竝袈裟在通度寺戒壇 其餘未詳所在)
~「삼국유사」~



자장법사가 가져왔다는 이 내용이 중요하다. 법사의 당나라에서 수행과정이나 그곳에서 받은 대우, 가지고 온 사리와 물품, 그리고 귀국 후의 활동 등을 봤을 때 그렇다.


봉정암 사리탑에 봉안된 사리는 643년 당나라에서 자장이 귀국할 때 가져온 진신사리다. 위의 삼국유사 기록에서 보듯이 사리 100립은 셋으로 나눠 황룡사탑, 태화탑,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나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그 나머지”란 사리 100립 이외의 부처의 두골(즉, 불뇌사리)과 치아(사리)를 지칭한다. 높고, 빼어난 곳에 모신 사리는 당연히 불두골(불뇌) 사리가 아니겠는가.
그 당시 신라에서 가장 가장 웅대하고, 국력을 기울여 지은 사찰은 신라의 서울이던 지금의 경주에 있던 황룡사다. 이 절을 서기 553년에 지었는데, 90여년이 지난 645년에 9층목탑이 준공되었다. 이 탑의 심초석에 봉안한 사리가 불두골(불뇌)사리가 아니라면, 봉안할 곳은 한 곳 밖에 없다. 높고 빼어난 곳, 바로 봉정암이다.
그런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봉안 중인 황룡사9층탑 심초석에서 나온 사리는 뇌사리가 아니다. 아래 사진이 황룡사9층탑에서 나온 사리다.



다만, 그때 자장율사가 봉안한 곳이 현재의 탑인지, 아니면 그 뒤에 만든 지금의 탑으로 옮겨 봉안했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의 모양이 신라 때의 탑 모양이 아니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소불자 달메가 삼국유사, 삼국사기, 기타 가능한 모든 자료를 근거로 2005년 말에 쓴 것인데, 2007년 4월 6일에 봉정암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을 2013년 4월 10일에 약간 고치고, 줄인 것이다. 줄이지 않은 전체 내용은 아래 주소로 가면 있다.


전체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면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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